붕대를 풀다.
아침을 먹고 편의점에 갔다가, 인터넷을 하러 또 휴게실에 왔습니다. 덕분에 이렇게라도 좀 돌아다니는 겁니다.ㅋㅋ 일요일이라 그런지 병동이 더 한산했습니다. 유튜브로 시사다큐를 보면서 이북을 읽습니다. 전자책은 잘 사용하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의무기록 사본 발급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카톡이 온 게 있는데 그냥 무시했다가 돈도 많이 들였는데 한 번 봐볼까 싶어서 신청을 해주었습니다. 월요일에 수령하는 걸로 했는데 과연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결과적으로 그냥 집에 왔습니다.)
12시30분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맛은 어김없이 좋습니다. 뭔가 잘 먹어야 수술 부위 회복이 빠르지 않을까 하여 이래저래 열심히 먹는 것도 있습니다. 일요일의 낮은 정말 호젓합니다. 하지만 어서 붕대를 풀고 싶어서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합니다. 언제 부를지 몰라서 침상에서 기다립니다. 붕대로 가려놓은 부위가 이따금씩 가렵다. 이제는 정말 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드디어!! 붕대 풀기
2시10분 드디어 의사 쌤이 오셔서 붕대를 벗겨주셨습니다. 근데 처치실로 이동하지 않고 내 침대에서 그냥 벗겼습니다. 그것도 드라마티컬하게 돌돌 벗기는 게 아니라 그냥 훌렁 벗기셨습니다. 응?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셨습니다. 절개 길이는 귀 뒤 타원형으로 5~7cm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다행히 머리카락을 전혀 자르지 않으셨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후기를 보면 피부만 남기고 꽤 넓은 면적을 다 민머리로 반질반질하게 밀어버린 사진을 봤는데 난 정말 머리카락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수술 직전에 3mm 투블럭으로 이발하고 온 보람이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수술 부위에 물 닿지 않게 주의해달라고 하셔서 머리 감을 때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절개부위를 보니까 꿰매거나 하지 않고 그냥 의료용 본드? 풀로 붙여둔 것 같았습니다.
<혐짤일 수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혐짤일 수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혐짤일 수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붕대를 풀고 대기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이송원이 나를 데리러 와서 x-ray를 한장 찍고 왔습니다. - 이 과정이 꽤나 신속하게 착착착 이루어진 느낌입니다. 엑스레이 찍으러 갈 때는 나 말고도 또 인공와우 수술을 하신 할아버지가 계셔서 같이 갔습니다. 75세라고 하셨는데 50대 정도 되어보이는 아드님이 모시고 다녔습니다. 한 쪽 귀로 사시다가 한 쪽 귀마저 안 좋아져서 서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휴게실에서 많이 봰 할아버님이셨습니다. TV를 보시면서 이따금 크게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르신이셨습니다.
붕대를 풀고 감각을 느껴보니 뭔가 왼쪽 귀 부근에.. 귓구멍 안 쪽으로 뭐가 있는 느낌이 납니다. 예전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일단 지금은 신경이 쓰이게 됐고, 아주 오랫동안 안 들리는 게 당연했던 부분이었는데, 어쩐지 안 들려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왜 안들리지?라는 생각을 조금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수술 부위 표면 위를 손가락을 더듬어 봤는데 속 안에 얇게 뭔가 자리잡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내일 기계 붙였을 때 어떠려나 ㅋㅋ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붕대를 푸니까 좋은 점은 마스크를 편하게 쓸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붕대 때문에 한 쪽이 카트라이더 헬맷 같은 상대였던지라 마스크 끈을 의료용 테이프로 붙여야했는데 붕대를 푸니까 그냥 귀에 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쩐지 붕대를 푸니까 이제 어지럼증도 더 나아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3시 휴게실에 갔다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오며 가며 보니까 오늘 입원하는 환자들이 꽤 있는 모양입니다. 뭔가 후임을 받는 선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 병동에는 2인실이 세네개실 있고, 1인실이 한 개 있는데 오늘 1인실에는 외국인 남성이 들어갔습니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였습니다.
휴게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현기증이 좀 있지만 큰 부담은 아닙니다. 휴게실에서 고개를 들어 티브이를 보니까 여자 배구 올스타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스포츠 중계에 별 관심이 없지만 올스타전이라니 좀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병실에 와이파이가 안 잡혀서 LTE데이터 소모가 심하다보니 이제 680MB 밖에 안 남았습니다. 데이터를 아예 꺼버렸습니다.
현기증 체험
4시 심심해서 지하 1층에 내려가봤습니다. 일요일이지만 식당과 빵집과 편의점이 영업 중이었습니다. 크렌베리 샌드위치, 치즈볼, 그리고 캔커피를 샀습니다. 빵집에서 빵을 종이봉투에 넣어줬습니다. 그 봉투에 캔커피를 넣었더니 종이봉투가 찢어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졌습니다. 바닥으로 캔커피가 떨어졌는데 그걸 주우려고 몸을 운신하는 순간 상당한 현기증이 몰려왔습니다. 넘어지진 않았고,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꼴이 웃겼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습니다. 내 상태가 그 정도인 것입니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나는 주로 영상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자연히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늘 그렇듯 우측 귀에만 꽂고 있습니다. 평소엔 이렇게 사생활이 보장된 장소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것에 별로 위화감을 못 느꼈는데 지금은 뭔가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드는지 왼쪽 귀가 자꾸 신경 쓰입니다. 왼쪽에서 아무 것도 안 들리는 건 똑같은데.. 뭔가가 달리진 것 같습니다. 임플란트 삽입과 수술 붓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겠지요?
수술부위
항균 소독 물티슈로 수술한 귀의 귓구멍과 귓바퀴를 닦아보니 소독약 말라붙은 게 노랗게 묻어나오길래 조심조심 닦아냈습니다. 조금씩 깨끗해져갔습니다. 수술 전 안내받은 내용 중에 수술 후 수술 부위 중 일부는 신경이 잘려서 한 동안 감각이 안 돌아올거라고 그랬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촉진하기로는 귓바퀴의 윗부분에 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전혀는 아니고 많이 없습니다.
이 주사 바늘은 내일 최원하기 직전에 제거하게 됩니다. 라인 하나 가지고 5일을 버티는 건 정말 대단하네요.
퇴원 안내
5시15분 간호사 두 명이 와서 퇴원 설명을 하고 갔습니다. 돈 내고 문자 오면 약 받아서 나가라는 것. 주의사항이 꽤 많았는데.. 봉합 본드 자연스럽게 떨어지도록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약이나 홍삼 금지, 목욕 1개월 금지(어차피 안 함), 수술 부위에 물 닿지 않는 머리감기와 샤워는 할 수 있음. 술 담배 금지, 비행기 탑승 금지(응?), 소음이 심한 곳 피하기, 코를 세게 풀거나 만지지 않기, MRI촬영 금지, 공항 금속탐지기 금지라고 함. 수술 전에는 MRI도 3테슬라까지는 된다고 했는데 수술하니까 이제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당부를 하는 듯.. 금속탐지기도.. 아예 안 된다고까지는 안 했던 것 같은데 이것도 주변에도 가지 말라고 하네. 약간 말 바꾸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뭐가 뭔지 =3
)님 퇴원 후 주의사항과 치료계획 정보 46435207 진료과 이비인후과 지정의 퇴원일자 상처 관리 으세요 ▶ 실밥제거: 없습니다. ▷ 세발: 수술 부위에 물 닿지 않게 하세요. ▷ 샤워: 수술 부위 및 귀 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하세요. ▷ 피부봉합용 접착제/테이프 : 1~2주 안에 상처가 아물면서 자연적으로 떨어집니다. 임의로 제거하지 않습니다. ▷ 수술 부위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퇴원 후 관리 및 주의사항 드세요 ▷ 규칙적인 식사, 골고루 섭취 식이 ▷ 한약이나 홍삼 등의 건강 보조 식품: 간이나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음 먹지 마세요 지켜 주세요 ▶통목욕/사우나: 수술 후 1개월 이후부터 가능합니다 ▷ 하루 30분 정도 걷기 운동이나 산책 가능 ▷ 감염예방을 위해 항상 손 씻기 (특히 외출 후, 식사 전) 일상 생활 하지 마세요 ▷ 담배 ▶무리한 운동이나 활동, 힘을 과하게 쓰는 행동 ▷ 비행기 탑승 금지 ▶ 소음이 심한 곳(공연장 스피커 앞, 항공기 이착륙 소음 정도) 피하기 ▷ 코를 세게 풀거나 만지지 않기 ▷ MRI 촬영, 공항 등 금속탐지기 주변에 가지 마세요. ▷ 겨울철 정전기 주의하세요. 기타 주의 사항 퇴원 후 주의사항과 치료계획 정보지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활용하십시오. ※ 다음 검사나 외래방문 시 이 안내문을 참고하세요
저녁식사
6시 저녁을 먹었음. 닭가슴살 조림이라고 부를만한 요리가 메인으로 나왔는데 꽤 좋았습니다. 이래저래 밥이 꽤 맛있는 병원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밥에 불만이 안 생깁니다.
머리를 감다
밥 먹으면서 보던 영화 하나를 마저 다 보고.. 식판을 반납하고, 양치하고.. 샤워를 감. 오랜만에 머리를 감았습니다. 산뜻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왼쪽 귀 뒤를 신체의 최상단이 돠도록 체위를 설정하고 씻는데 그럭저럭 할만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살살.. 뗍니다. 많이 깔끔해졌네요.
아 근데 생 머리카락들이 좀 뭉텅이로 빠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두자니 너무 찝찝하게 엉겨붙어 있어서;;
벌써 병원에서 네번째 밤이고, 마지막 밤인데 이제 드디어 집에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마지막 밤이라 좀 더 설렙니다. 그나저나 내일은 8시30분에 매핑이 예약되어 있고.. 간호사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기를 무슨 전정검사도 있다는 것 같습니다. 어지럽다는 말을 자꾸 하니까 시키는 검사인 것 같습니다. 귀에 물 넣는 그 검사인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고.. 그 고글 쓰고 목 꺾는 그 검사인 것 같습니다.(맞음) 아직 현기증이 약간 있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돌아가는 기차를 예약했습니다. 언제 탈 수 있을지 몰라서 하나는 1시 10분, 다른 하나는 3시30분으로 예약해 뒀습니다. SRT 인기가 아주 보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SRT 없어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내일 어떤 기기를 받게될지 모르겠다. 근데 마음 속에서는 칸소2가 좀 땡깁니다. 왜냐하면 n7을 쓰면 선글라스를 쓰기 힘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긴 근데.. 일 년에 몇 번 안 쓰긴 하지만요..
퇴원날=매핑하는 날 = 기계 대여하는 날
마지막 날에는 12시? 1시? 쯤 잤고.. 잘 잤습니다.. 이제는 집 같아서 아주 숙면을 취합니다. 6시30분에 의사가 깨워서 병동 내에 있는 이비인후과 치료실로 데려가서는 사진을 찍고 아침 매핑 받고 잘 가라고 했다. 이 절차가 끝나니까 오전 7시였다.
일단 퇴원일이기도 하므로 간단히 샤워를 했습니다. 바로 또 머리를 감았습니다. 귀 뒤 쪽은 사실 챙겨서 씻어줘야 하는 부분인만큼 조심하려고 한다면 물이 안 튀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면도도 하고 아주 뽀송이가 되어서 돌아오니 병실에 아침 식사가 도착해 있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이제는 병실 생활에 너무 적응을 잘 해서 떠나기가 좀 싫습니다. 먹고 영화보고 자는 일의 반복이란.. 황홀하군요..
병실로 돌아오니 맞은편의 총각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안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통성명이라도 할까 했는데 반가웠습니다. 총각은 자신이 지금 엿새째 머리를 못 감았다며, 내게 머리를 어떻게 감았는지 물어왔습니다. 나는 내가 어떻게 머리를 감았는지 최대한 자세히 몸동작까지 섞어가며 설명했습니다.
밥 먹고.. 자 그럼 이제 짐을 싸야겠군요. 8시30분 매핑이니까.. 간호사가 와서 식후 약을 주고 갔고.. 내가 8시30분 매핑은 그냥 내가 알아서 가면 되냐고 물으니까.. 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계신 것 같았는데 얼른 다시 확인하고 오시더니 곧 이송원 오실 거라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오케이. 다만 전정검사 시간이 몇 시로 잡힐지 그게 좀 걱정입니다.
옷도 정리하고.. 양압기도 정리하고.. 그랬습니다. 양압기는 정말 최고입니다. 특히 습도 조절을 해주기 때문에 건조한 병실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해줍니다. 수술 후 인후통을 극복할 수 있던 것도 양압기의 도움이 크지 않았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압기 소독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사용하면 합병증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전에 양압기 물통 제대로 안 닦고 쓰다가 진짜 골로 갈뻔 했습니다. 인공와우 수술 관련해서 설명 들을 때 간호사가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권했고, 수술 전후로도 심호흡 잘 해야 폐렴 예방할 수 있다고 당부했는데, 그런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양압기 세균 관리 진짜 잘 해야 합니다. 저는는 병원 오기 전날 물통이랑 호스 등을 다 젖병 세정제를 이용해서 잘 청소해서 가져왔습니다. 근데 지금 코를 파다 보니까 콧구멍에서 조금 큰 피딱지가 말캉한게 나왔는데 혹시 수술이랑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어차피 큰 문제는 아니다.(근데 퇴원 다음날에도 피코딱지 나옵니다.)
8시15분 이송원이 오셔서 매핑실로 이동했습니다. 1층으로 내려간 다음 암병동 쪽으로 한참 걸어가는데 아무래도 아직 좀 어지럽습니다. 한 잔 걸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저녁 반주 가볍게 했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어 그럼 그냥 이 정도로 쭉 유지되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ㅋㅋㅋㅋㅋ
8시30분 맵핑실에 들어갔습니다. 맵핑실 앞 소파에 미리 앉아계시던 분이 계셨는데 내가 들어서니까? 인사를 하셨습니다. 코클리어 업체 직원이셨습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일단은 맵핑실에 들어갔고, 업체분께서 맵핑선생님께 대여기기 N7을 건네어 내 머리에 부착했습니다. 떨렸습니다. 첫 맵핑은 볼륨 조절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들려주는 소리가 큰지 작은지를 대답하면 되는데, 문제는 이게 처음 듣는 거다 보니까 이 소리를 크다고 해야할지 작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나다. 아니 애당초 그걸 '소리'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계음'도 아닙니다. 그냥 '진동'의 형태입니다 아직은.. 소리를 크게 올렸을 때는 뭔가 소리로 들리는 것도 같은데 아직은 그렇게 들을 자신이 없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한쪽 귀로만 소리를 들어오고 거기에 익숙해진 상태이다 보니까....... 오른쪽 귀를 열어둔 상태에서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니까 소리가 넘친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크다'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가 진동의 형태로 뇌를 계속 때려서 심장이 엄청 두근두근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들리는 귀를 막으니까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같아서 감을 못 잡겠습니다. 이걸 크다고 얘기해야 할까 작다고 얘기해야 할까? 이건 마치 소금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간을 보라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나는 분명 한 때 왼쪽 귀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고 오른쪽 귀로 계속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는데 그렇다면 나는 소금의 맛을 아는 상태라고 해야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이 혀와 다른 까닭은 혀는 하나이지만 귀는 두 개이기 때문이다. 한 쪽 귀로 듣는 소리를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하고 판단하던 나는 이제 인공와우+귀를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해야하는 적응이라는 게 다름 아닌 그런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듣는 기준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일단 매핑 선생님께서는 내가 지금 정말 오랜만에 소리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뇌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레벨에서 시작하는데 날짜가 지남에 따라서 기계에 입력된 프로그램을 넘겨감으로써 큰 소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연습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공와우를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늘 착용하고 생활하라고 하셨고, 직장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가정에서는 들리는 오른쪽 귀를 귀마개로 막고 인공와우로만 들으려고 훈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둘 다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전자는 너무 시끄러워서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고, 후자는 아무 것도 못 알아들을 것 같습니다. 맵핑을 일단 하고.. 다음 일정을 잡았다. 원래는 일주일마다 와야하는데 여기 맵핑실도 지금 방학 시즌이라 바쁘고 나도 당장은 바로 올 수 없는 상황인지라 3주 뒤에 오기로 했습니다.
맵핑실에서 대기실로 나가니까 코클리어 업체 직원께서 나를 앉히시고 기기 대여 동의서 작성 절차를 진행하셨습니다. 원체 많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까 어느 정도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느낌도 들어서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고가의 기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의를 많이 요한다고 해야겠지요.
동의서를 작성했고, 기기의 사용법도 설명해주셨는데 굉장히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원래 이 제품은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하지만, 대여기간 중에는 일회용 배터리(아연공기 전지)를 사용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전지를 어떻게 수급해야 하나 걱정이 됐지만, 건네주시는 쇼핑백을 들여다보니 꽤 넉넉하게 전지를 챙겨주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은 버티겠던데요.
코클리어 인공와우 N7의 간단한 사용 설명서
9시 맵핑실에서 나오니까 코클리어 업체 직원이 검사실 바로 앞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앉히고 대여 절차 및 사용 설명 진행했습니다. 켜는 법부터 시작해서.. 프로그램 바꾸는 방법, 배터리 탈부착 방법(대여기간에는 충전식 배터리가 아니라 교체용 공기아연 배터리를 사용합니다. 이 배터리는 포장을 뜯은 다음 공가 중에 15분 노출시켜 사용해야 한다는 데 그런 점이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배터리 부족하면 사용자가 추가로 구입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부족하면 전화달라고 하셨고, 일단 굉장히 넉넉하게 챙겨주시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번 교체하면 이틀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매핑이랑 기기대여 설명 듣고 계약서 작성 끝나고 암병동 1층 청력 검사실로 와서 전정 검사를 했습니다. 고글 쓰고 앞에 있는 붉은 점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검사진행 요원이 내 목을 여러 방향을 휙휙 돌렸을 때 내 눈이 그 점을 잘 추적하는지를 보는 그런 검사를 했습니다. 그라고 완전한 어둠에서 내 눈동자가 잘 균형을 잡는지도 봤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할 때보다 좀 더 힘든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제 느끼기로는 어지러운 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퇴원 수속
자 이젠 정말 집에 가는 겁니다.
10시 검사 다 끝나고 병동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병원 복도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리들이 인공와우를 통해 내 뇌를 때렸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여전히 나는 잔뜩 겁을 먹은 상태가 되어 병동으로 돌아올라왔습니다.
드디어 팔에 주사 바늘 뺐습니다. 근데 정말 기술이 좋아져서.. 저 바늘 끼우고 있는 걸로 인해서 크게 불편을 못 느끼고 살았습니다. 샤워도 그냥 마음대로 하고 말이죠.
신청한 서류들 중 수술확인서, 진단서, 입원사실증명서를 받았고, 이건 확인용이라서 원무과 수납할 때 진본으로 교환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세부계산서 등은 자동발급기를 이용하면 됩니다.(근데 이것도 원무과에서 계산할 때 다 뽑아줬습니다. 서비스? 굿)
10시 10분 병실에 들어가서 의사 총각이랑 대화했습니다. 인공 와우를 착용해보니 어떻게 들리는지 설명을 해주고 싶었는데 설명이 어렵습니다. 서로의 난청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이 총각도 나랑 똑같이 좌편측 난청이었는데, 그러고보니 살면서 나랑 똑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지금 처음 만나는 거 같은데.. 이거 엄청 놀라운 경험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화가 굉장히 뜻깊게 진행됐는데 아쉽게도 이 총각도 검사 받으러 가야해서 오래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잘 적응하고 좋은 결과 있기를 축복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 아 정말 그러고보니 이렇게 똑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난생 처음이네요. 헐..... 이것 참 외로운 경험들입니다.
10시 15분 간호사 쌤께 퇴원 설명 들었습니다. 외래 언제 잡혔다고 간호사 설명 듣고, 약 받았습니다. 약이 꽤나 많습니다.
10시 20분 드디어 돈 내러 갑니다. 6층으로 갔다. 75세 할아버지의 아드님을 만나서 같이 올라갔습니다.
카톡 온 거 보니까 1,700만원입니다. 아니다 몇 푼 더하면 그냥 1,800만원입니다. 아직 기계 구입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라서 기계값이 안 포함됐습니다. 아 이러면 결국 실손보험 신청은 최종 기계값까지 나온 다음에 신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농협카드 무이자 최대기간인 6개월 할부로 했습니다. 한 달에 300정도 나가겠네요.
계산하면서 4인실 병실 가격표를 보니까 하루에 36,165원~42,606원 정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1인실만 안 걸리면 되는 겁니다. 2인실로 하루 10만원이면 되네요. 음.. 4인실이랑 비교하면 차이가 좀 나지만요. 아무래도 4인실이 짱짱인 것 같습니다.
11시 짐을 싸서 병실을 나왔습니다. 수술입원기록 작성할 게 많아서 일단 휴게실에 왔습니다. 여기서 휴대폰으로 일지 작성을 좀 하다가 나가야지. 어차피 기차는 1시10분 기차입니다. 보호자 식당에 가서 어제 구입한 샌드위치나 먹을까 싶습니다.(하지만 결국 수서SRT역에 가서 먹습니다.)
인공와우 끼우고 적응하다보니까 물소리나 환풍기 소리는 압이 좀 다르게 들려서 신기했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소리 분별을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대변을 좀 봐야할 것 같은데.. 어제 억지로 조금 눈 걸 제외하고는 제대로 변을 못 봤습니다. 전신 마취 후유증이겠거니 생각을 해봅니다.
인공와우 착용하고 돌아다녀 보니까 아무래도 사람들 시선이 좀 느껴지는데 특히 엘리베이터가 쩝니다. 시건이 느껴집니다 느껴져요. 뭐 어차피 관종 기질이 있기 때문에 시선을 끈다고 해서 그걸 꼭 부정적인 걸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미를 따져보자면 안경이나 와우나 같은 맥락 위에 서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만 근데 이 N7 제품이 지금 귀걸이형인데도 불구하고.. 잘못하면 떨어진다는 게 소름끼칩니다.. 마스크 벗다가 침대 위에 한 번 떨어뜨려서 식겁했습니다. 귀걸이형이 이러면 일체형 부착형은 더할 것 같은데.. 아니면 차라리 강한 자석 힘과 머리핀으로 부착하는 칸소가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와우수술을 통해 가장 기대했던 것 중의 하나는 소리 방향감인데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왼쪽에서 소리가 나면 진동이 발생하기는 하는데 이 기계가 그냥 원체 예민한터라.. 어디에서든 소리가 나면 그냥 울립니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도 울립니다. 마우스 클릭 소리에도 울립니다. 그렇다보니까 키보드 타이핑 치고 있으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12시 병동 화장실에서 대변을 시도했으나 실패입니다. 이제는 셔틀 타러 가야겠다 싶어서 드디어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에 나왔습니다. 셔틀 줄을 섰는데 뒤에서 큰 소리로 내 등에 바짝 붙어서 통화하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내 인공와우를 계속 때렸습니다. 존재감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이 아주머니께서 내 왼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방향감도 성립했습니다.
12시10분 셔틀 버스를 탔습니다.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끼우고 유튜브를 틀었습니다. 이어폰을 꼈으니 이제 오른쪽 귀로는 외부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왼쪽 인공와우가 외부의 소리를 전해주었는데, 역시 그냥 진동의 수준입니다. 다만 그런 진동이라도 외부세계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있음을 내게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나는 아주 오랫 동안 한 쪽으로는 바깥 소리, 한 쪽으로는 이어폰 소리를 듣는 경험을 못 해봤기 때문에 아직은 이 상태에서 왼쪽에 어떤 자극이 왔을 때 내 뇌가 그 자극을 이어폰이 아닌 바깥에서 지각된 자극이라고 인지하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자꾸만 나도 모르게 왼쪽에서 울리는 자극을 느꼈을 때, 내가 지금 오른쪽에서 들리는 유튜브 자극이 왼쪽으로는 저렇개 들리나보다 이렇게 비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폰을 빼면 그제서야 아.. 이어폰 소리가 아니라 바깥에서 나는 이 소리였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폰을 빼니 버스의 엔진소리가 꽤 컸다. 그렇군요. 왼쪽에서 내 귀를 때리던 그 소리는 버스의 엔진 소리였군요.
그리고 어쩌면 재활을 잘 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요령이 필요하겠거니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상대의 왼쪽에서 오른쪽 귀로 들으려 노력했다면 재활을 위해서는 집에서라도 아내의 오른쪽에서 소통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 아내는 또 어서 실험해보고 싶어서 아주 신나서 달려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딱히 크게 어지럽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폰질을 해도 멀미는 없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진동이 되어 내 청신경을 때렸습니다.
갑자기 인공와우에서 딱따구리 소리 같은 리듬의 강력한 진동이 들어오길래 오른쪽 귀로 들어보니까 굴삭기가 아스팔트를 깨서 까내는 소리였습니다.
ㄴ
수서역에서 어제 산 샌드위치와 치즈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던킨이나 롯데리아에서 커파라도 사서 앉을까 했는데 SRT라운지라는 휴게실이 있어서 그냥 돈 안 쓰고 취식할 수 있었습니다. 좋았습니다.
이후 시간 맞춰 기차에 탔는데 SRT 내부에 잡소리가 은근히 있는지 와우 진동이 상당했습니다. 스마트폰 소음측정기로 보니까 평균 66데시벨이었습니다. 승무원이 차내 방송을 했는데 양질의 하이톤 딕션이라 왠지 알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하여간 차내 방송을 하면 인공와우가 참 드라마틱하게 떨립니다.
문득 귀라는 게 방패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한 개의 방패만 가지고 여러 방향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소리를 받아왔습니다. 방패 하나로 다 하려니까 참 힘겹고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이상한 놈이지만 새로운 방패를 얻었습니다. 이제는 이걸 좋은 방패로, 쓸만한 방패로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과연 이 방패를 새로 영입한 게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가늠이 될 것 같습니다.
여담
예상한대로 고객상담실에 올린 고객의 소리 민원은 월요일이 되어서야 접수가 되었습니다. 근데 퇴월할 때 보니까 와이파이가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거이거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작정 욕하는 내용의 민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블랙 컨슈머는 아닌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에 와서 인공와우와 갤럭시S10 스마트폰을 블루투스 연결해봤습니다. 구글 플레이에서 '코클리어'로 검색하면 그냥 바로 뙇 나오는 어플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연결하니까 연결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를 이용해서 박효신의 '야생화'를 플레이 해봤는데요. 전혀.. ㅋㅋ 아무 것도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진동은 있는데요. 발음이나 음의 높낮이나 그런 거 모르겠어요 ㅎㅎ 그냥 박자만 있습니다. 박자만.
마치며
지금까지 제가 인공와우 수술하면서 입원한 과정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측난청인으로 살아가면서 참 이 고통을 함께 공감할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어서 TMI 다분한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지난한 재활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길래 저렇게 '재활'이 힘들고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인공와우 끼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한 쪽 청력으로 사람 노릇하며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익힌 요령이 많았는데
이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후후후.
두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설레는 일입니다.
지난 '수술 전 검사' 이야기
'병원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삼성 병원 병실 입원료(병실료 조견표) - 건강보험적용(외과계/내과계)건강보험 적용 時 본인부담금 (0) | 2023.01.31 |
---|---|
코클리어 인공와우 N7 대여품 (0) | 2023.01.31 |
편측난청 인공와우 수술 후기 3부(2023년 삼성서울병원) (0) | 2023.01.31 |
편측난청 인공와우 수술 후기 2부(2023년 삼성서울병원) (0) | 2023.01.31 |
편측난청 인공와우 수술 후기 1부(2023년 삼성서울병원) (1) | 2023.01.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