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1학년도 정시 원서 접수기간에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을 써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문득 나를 비롯해서 지금 정시에 걸려있는 아이들의 처지가 너무나도 기구하고 처량하기 때문이다.
22명의 아이들 중에서 예체능이 두 명이다. 그 두 명을 제외하고 여섯명의 아이가 정시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한 명은 이미 재수를 확정지었고, 두 명은 파워정시였따. 나머지 세 명은 수시를 실패하여 정시까지 오게 됐다.
그 세 명 중 한 명은 애당초 논술로 모험을 했으니 별로 억울할 것이 없겠지만 나머지 두 명을 보면 마음이 좀 복잡하다.
두 사람 모두 다 수시를 올려쓴 감이 없지 않다.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주변의 환경이나 분위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너무 높게 혹은 너무 낮게 지원하는 게 문제가 된다.
경우에 따라, 높게와 낮게의 범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으로 이 두 학생은 아넌장치 거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거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명은 3등급 중반이 광명상가를 안전빵으로 거는 것을 거부했따. 국숭세단을 최저점으로 설정했다는 것인데 당연히 이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아무리 높여 써도 광명상가가 한계였어야 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중앙대에서부터 국숭세단 사이에서만 썼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이 학생은 모든 학과를 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으로 돌려썼다. 학과라도 괜찮았으면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높은 학교 높은 학과들로 써버렸다. 생기부가 참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두 가지 난관을 뚫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단국대 커뮤니케이션 사회적 배려자 전형에서 3위에 머물렀다. 예비번호를 5번으로 받았는데 추가합격이 3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수시는 끝이났다. 수시의 리스크를 생각하면 수능을 좀 잘 봤어야했다. 물론 잘 보려고 노력했으리라. 그랬어야 하고 그렇게 믿고 싶으며,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수시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한없이 낮은 곳들을 봐야했따. 정말 말 그대로 참단한 현실이었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정시를 마주하게 되면 이전에 우리가 조준하던 서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대학들은 더 이상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한다. 낯선 학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학생이나 나나 서로가 그 어색함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덩달아 사이가 서먹해진다. 그래서 정시의 초반에는 납득할 수 없거나 납득하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을 서로에게 미루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기가 힘들다.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힘겹게 대학공개 자료, 학원가 배치표, 진학사나 이투스의 예측 서비스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나간다. 이 작업은 대부분 선생님이 학생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 과정이 얼마나 덜 잔인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그나마 좀 더 작업 같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지만, 이따금 현실 타격이 올 때가 있다. 이 아이가 물마에 올려놓은 대학/학과 중에서 훨씬 더 성적이 낮은 아이가 수시로 진학한 학과가 있다면 말은 못해도 서로 마음이 찢어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끝까지 말리지 않은 스스로를 탓해야지.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자신을 탓해야지. 웃긴 것은 그렇게 현실에 좌절하고 슬퍼하다가도 그 좀처럼 맘에 차지 않는 대학/학과의 합격전망이 긍정적으로 다가오면 그게 또 내심 반갑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원체 교만한 존재라지만 이런 도가 좀 지나치지 않나 할 때가 있따.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학교의 학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마음이 안심이 되고, 기쁘게 생각되는 사이에 갑자기 밀려오는 현타는 너무나도 눈부신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을 돌려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나쯤은 좀 낮춰서 쓰라는 말을 진지하게 제대로 한 번은 더 해줘야 할 것 같다.
수능을 이렇게 못 볼 줄 몰랐다. 평소처럼 평타라도 쳤으면 이 정도 얘기까지는 안 해도 됐을 텐데.. 어쩌면 나나 학생들이나 모평에 속았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했다. 이과는 몰라도 문과는 사탐에서 생윤 같은게 1~2등급 하는 애들이 20%는 나와야 정상인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그리고 수능 직전에 코로나 때문에 가정학습을 엄청나게 쓰면서 수능벼락치기가 잘 안 됐따. 최종 강의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본 아이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지금의 나는 학생들과 함께 결과를 받아들여야하는 처지지만 이 글을 읽는 미래의 당신은 부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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